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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수께끼의 철가면 사건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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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305회 댓글 0건 작성일 20-06-30 1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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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면 죄수가 탄 가마가 바스티유 문에 도착하자, 성채 주위에 있는 상점들은 모두 문을 닫았고, 문지기들도 죄수의 얼굴을 못 보도록

얼굴을 벽쪽으로 돌리고 정중하게 가마를 맞이했다고 합니다. 뭐니뭐니 해도 가면 남자의 존재를 맨 처음 세상에 널리 알린 것은

유명한 사상가 볼테드일 것입니다. 1751년 그의 저서 '루이 14세의 세기'에서 처음으로 '철가면의 비밀'이 들춰 집니다.


"1661년 마지랭 추기경이 죽고 수년이 지난 후, 철가면을 쓴 젊은 죄수가 생트마르그리트 섬의 감옥에서 이송되었다. 죄수는 가면을

벗으면 즉시 살해하도록 되어있었다. 지수는 신분이 매우 높은 듯, 그의 부탁은 모두 들어 주었다. 호화스러운 식사가 공급되었고,

간수장도 그 앞에서는 기립하고 있어야 했다. 어느 날 죄수가 은 접시에 나이프로 글자를 새겨 창문을 통해 밖으로 던진적이 있었다.

그것을 어부가 주워 간수장에게 전하자, 간수장은 뭐가 쓰여 있었는지, 그 글자를 읽었느야고 어부에게 물었다. 어부가 자기는 글을

읽을 줄 모른다고 대답하자, '너는 운이 좋은 놈이다.'라고 간수장이 말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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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 14세 초상화>


왕족이 식사를 할 때는, 그들이 허락을 하기 전까지는 기립 자세를 유지하는 것이 그들의 예절이었습니다. 볼테르의 설은 화제를

불러일으켰고, 그로부터 20년 후, 그는 다시 한번 가면 남자의 정체에 대해서 내린 결론을 발표하게 됩니다. 그 결론에 따르면,

가면 속 남자는 루이 13세의 비와 당시 재상인 마자랭 추기경 사이에서 태어난 사생아라고 합니다. 당시 루이 13세는 성불능이었고,

그와 왕비는 사이가 나빴으며, 왕비는 마자랭과 불륜 관계라는 소문이 자자했다고 합니다.


왕비는 국왕과의 사이에 자식이 없는 것이 자기 탓이라고 믿고 있었는데, 사생아가 태어나면서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게됩니다.

왕비에게서 그 사실을 들은 추기경 마자랭은 국왕이 태어날 아기가 자신의 아기라고 믿도록 하기 위해 국왕과 왕비가 우연히

잠자리를 같이 하도록 일을 꾸몄습니다. 그렇게 태어난 아기가 루이 14세였습니다. 한편 그들은 국왕이 모르도록 태어난 사생아를

다른 곳에 숨겼습니다. 그러나 루이 14세는 결국 자기와 똑같이 생긴 형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왕위를 요구할 것을 우려해

형을 붙잡아서 가면을 씌운 채 감옥에 가둔 채 생의 마감하게 합니다.


그러나 현재로서는 볼테르의 설은 신빙성이 매우 희박하다고 합니다. 당시 왕비는 전 신하가 보는 앞에서 출산을 했기 때문에

태어난 아기를 감춰 두는 것은 거의 불가능 했고, 게다가 왕가의 서자는 투옥되기는 커녕 영지와 연금을 주는 것이 보통이었습니다.

헛소문을 퍼뜨려 진실을 은폐하려 한 국왕 측의 수법에 볼테르가 걸려들었던 것으로 보는 것이 역사 연구가들의 공통된 견해 입니다.


볼테르의 폭로가 있고 약 100년 후인 1847년, 문호 알렉상드르 뒤마가 대표작 [삼총사]를 출판했습니다. 그 덕에 철가면의 수수께끼는 

다시한번 세상의 주목을 받게 됩니다. 가면의 죄수는 루이 14세의 쌍둥이 동생이며, 사령관 생마르가 적은 기밀분서에도 이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는 것이 뒤마의 주장이었습니다. 그 문서는 프랑스 혁명 후 외무부의 기록보관실에서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그 문서에

의하면 "루이 14세가 태어난 것은 1638년 9월 5일 낮 12시경이고, 동생이 태어난 것은 그날 밤 8시경이었다." 는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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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테르>


실은 왕비의 출산이 있기 얼마 전 파리에 양치기 두 명이 나타나 왕비가 쌍둥이를 출산하면 나라가 망할 것이라 예언했고, 왕의 이야기를

들은 추기경은 "만약 쌍둥이가 태어나면 후에 나온 아기에 대해서는 그 출생 사실을 감춰야만 합니다. 언젠가 왕위를 요구할지도 모르니까요."

라고 충고 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 문서는 현재로서는 위조문서라는 설이 강하다고 합니다. 우선 생마르가 이런 사실을 알았다면 직책상 그것을 기록하는 행위를

엄하게 금지했을 것이라는 추측때문입니다. 두 번째로 추기경은 1638년 9월5일부터 10월 2일까지 생캉탱에 머무르고 있었기 때문에

출산을 지켜봤을지 없다는 것이고, 세 번째로 왕가의 출산은 신하들 앞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왕비가 쌍둥이를 낳으면 그것이 발각되지

않을리 없다는 것입니다.


가면 남자의 주위에 있었던 사람들의 증언이 몇 개 남아 있는데, 우선 바스티유 감옥에서 죄수들을 돌보던 의사 마르조랑은 1698년 가면의

남자가 바스티유에 도착했을 때, 그가 "나는 60살 정도 됐다"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고 합니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남자는 1638년 생인

루이 14세와 같은 해에 태어난 것이 되는 됩니다. 또 죄수 가운데 한 명이었던 한 수도원장은 남자가 여기저기 여행한 적이 있다는 말을

들었다고 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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